[스크랩] 우리나라 집값이 정말로 비싼가?: PIR의 비교
전문가컬럼
그전에는 “월급 한 푼 안 쓰고 12년 치 꼬박 모아야 서울 중형아파트 장만”이라는 기사가 나온 기억이 있다. 친절하게도 “지출을 고려할 경우에는 평균 56년 6개월, 특히 강남권에선 89년 8개월이나 걸려 도시근로자가 월급을 모아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처럼 주기적으로 봉급생활자들 속을 뒤집어 놓는 기사가 뜨지만, 그러나 20년씩 돈을 모아서야 비로소 전세집을 얻었다거나, 90년 가까이 걸려서 강남 아파트를 샀다는 사람은 없다. 우선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를 전세로 들어가는 사람에게 저축한 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 전에 살던 집에서 뺀 전세금이나 기타 저축이 상당액 있을 것이다. 정 모아놓은 돈이 없다면, 아파트보다 전세금이 싼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나 좀 작은 아파트를 얻는 것이 당연하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돈을 더 모을 때까지 외곽 위성도시에 집을 얻고 출퇴근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결국, 이 기사들은 얼핏 듣기에 그럴듯하고 사람들 성질을 돋우는 데 효과가 있지만, 실제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왜곡된 정보일 뿐이다. 이런 기사를 내보내는 사람들은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나쁜 의도를 가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적합한 통계치를 사용하여 계산하고 그 결과를 과장되게 해석하지 않는다면, 집값과 소득을 비교하여 주거비 부담을 나타내는 시도는 의미를 가진다. 주택 연구자들은 흔히 소득대비 주택가격 배율(price income ratio, 이하 PIR)을 계산한다. 이 비율은 주택가격을 분자로 하고, 소득을 분모로 하는 간단한 형태지만, 대상을 어떤 시장으로 할지, 누구의 어떤 소득을 쓸 것인지, 어떤 집값을 쓸 것인지에 따라 그 값이 크게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만을 대상으로 집값을 계산하면 PIR 수치가 커진다. 평균적으로 단독, 다세대, 연립주택 보다 아파트의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역별 소득을 발표하지 않아서 전국 평균 소득을 분모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PIR 수치를 높이는 요인이다. 집값이 높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소득이 전국 평균 소득보다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집을 가진 가구만이 아닌 모든 가구의 소득을 쓸 때도 PIR이 올라간다.
집값과 소득의 평균을 쓰는가 중위수를 쓰는가에 따라서도 PIR이 다르게 나온다. 마지막으로는 표본의 평균(또는 중위수) 주택가격 및 소득을 먼저 구해서 양자 간의 비율을 구하는지, 또는 각 관측치의 PIR들을 먼저 구하고 그 비율의 평균(또는 중위수)을 구하는지에 따라서도 PIR이 달리 계산된다.
최근에 주택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은 계산방법에 따라 같은 표본에 대해 계산한 PIR이 얼마나 다르게 나오는지, 일관된 계산방법으로 산정할 때 우리나라의 PIR이 다른 나라와 어떻게 비교되는지를 연구하였다.
연구를 담당한 한양대학교 이창무 교수, KDI 스쿨 조만 교수, KDI 김현아 박사에 의하면, 2010년 전국의 PIR은 계산방법에 따라 4.0에서 7.1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그 결과의 일부가 논문의 <표 7>과 <표 8>에 보고되어 있는데, 서울과 수도권의 PIR도 각각 9.0∼17.6, 6.4∼11.4의 넓은 범위에 걸쳐있다.
이중 가장 높은 PIR 수치들은 지역별 자가 아파트가격과 전국 전 가구 소득으로부터 계산되는데, 한 경제연구소는 이렇게 계산된 PIR 값을 주택가격 거품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산방법에 따라 그 수치가 절반 가까이 떨어질 수도 있으므로, 이런 결론을 내리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표 1> 평균(or 중위수) 주택가격/평균(or 중위수) 가구소득으로 계산한 지역별 PIR
<표 2> 아파트 주택가격/가구소득으로 계산한 지역별 PIR
또한, 외국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우리나라 집값이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높지 않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자료와 산정방법의 일관성에 주의하면서 산정한 PIR 값을 보면 논문의 <표 9>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2010년 우리나라의 PIR은 4.4로 미국(3.5), 캐나다(3.4)보다는 높으나 호주(6.1), 영국(5.4), 홍콩(11.4)보다는 낮다. 도시권별로 비교해 보아도 우리나라 수도권의 PIR은 5.9로 토론토 권역(5.1)보다 높지만, 뉴욕(6.1), 시드니(9.6), 밴쿠버(9.5), 런던 권역(7.2)보다 낮은 수준이다.
여기서 왜 우리나라 수도권과 다른 나라의 도시를 비교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미국의 경우 뉴욕 대도시권(MSA)은 뉴욕시 행정구역뿐 아니라 배후 광역 생활권을 포괄하는 지역통계 단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서울시 경계만을 포함한 지역 개념과 크게 차이가 난다.
따라서 뉴욕 대도시권과의 적절한 비교 대상은 서울시 행정구역이 아니라 서울시를 포함하는 광역 도시권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그런 지역단위에 대해 통계가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수도권을 비교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표 3> 국가 및 주요 대도시권역별 PIR(2010년 기준)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언제나 집값이 비싸다. 그래서 집값이 소득이나 저축에 비해 비싸다는 기사를 보면 공감을 하고, 좌절과 울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과거 어떤 시기를 되돌아보아도 집값이 싸다고 느껴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값이 비싸다는 것이 주택을 정의하는 중요한 교과서적 특징일 정도이다. 앞서서 집을 구입했던 부모 형제들도 오랫동안 절약하고 돈을 모아 어렵게 어렵게 집을 장만했다.
정부가 집 장만에 여러 가지 혜택을 주지만, 그래도 일생일대의 투자를 하는 만큼 위험부담도 컸다. 그 덕분에 집값이 오를 때 큰 혜택을 보았고, 내 집을 가진 중산층의 위치를 굳힐 수 있었다.
주택시장 침체가 지속되니까 새집에 전세 살다가 지금보다 집값이 크게 떨어지면 그때야 집을 살지 말지 결정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시장 침체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또한 위와같이 외국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우리나라 집값이 소득에 비해 결코 과도하게 높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시장상황이 오름세로 전환될수도 있다.
그러면 시장 상황이 바뀌어서 집값이 오르는 시기가 왔을 때 정부에다 대고 집값 낮추라고 요구하지 말고, 능력이 되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미리미리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참고문헌>
이창무∙김현아∙조만,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의 산정방식 및 그 수준에 대한 국제비교”, 『주택연구』, 한국주택학회, 2012. 11.